“향으로 기억을 빚다” 화성 병점동 '아스라이 향수공방' 이동진 조향사의 이야기

72가지 향으로 완성하는 나만의 이야기

 

▲ 화성 병점동 '아스라이 향수공방'

 

화성시 병점동 한 건물 끝자락,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치는 것은 소리도 색도 없는 ‘향’이다.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공간의 성격을 설명해 주는 이 미묘한 감각이 ‘아스라이 향수공방’의 시작이다. 이곳은 72가지 향을 직접 시향하며, 각자의 취향과 기억을 담아 자신만의 향을 완성해보는 체험형 향수 공방이다.

 

공방을 운영하는 이동진 조향사는 이 공간을 “향을 만드는 장소이자,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시간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예쁜 향을 만들어가는 체험이 아니라, 향을 매개로 각자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보는 곳이라는 뜻이다.

 

▲ 이동진 조향사 용인시 행사 참여 모습

 

아스라이 향수공방에서는 완성된 향수를 판매하지 않는다. 향수 제조에는 별도의 제조 시설과 법적 요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곳에서는 방문객이 직접 향을 고르고, 조합하고, 수정하며 자신의 향을 만들어간다. 이동진 조향사는 “제가 대신 만들어주면 그건 제 향이지, 손님의 향은 아니다”라며, 공방의 중심 가치를 ‘직접 만드는 경험’에 둔다. 이곳에서 결과물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동진 조향사가 향에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은 의외로 전자담배였다. 연초 담배의 자극이 힘들어 전자담배를 시작했고, 다양한 향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이 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단순히 소비하는 향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그는 향을 배우기 위해 용인의 한 공방을 찾아가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이후 1년 가까이 조향을 배우며 출장 수업과 페스티벌 현장까지 함께 다녔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였어요. 그런데 향을 조합하면서 사람마다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게 너무 흥미로웠죠.”

 

특히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향을 맡고 웃거나, 오래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향을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며, 그는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기 시작했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현재 이동진 조향사는 화학 전공 진학도 준비 중이다. 향을 감각으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향을 좋아하는 마음과 기술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다.

 

아스라이 향수공방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향수 공방에서는 향 종류가 늘어날수록 추가 비용이 붙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서는 72가지 향을 모두 자유롭게 시향할 수 있다. 향을 고르는 과정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클래스 시간 역시 넉넉하다. 기본 수업 시간은 2시간이지만, 다음 예약이 없다면 조금 더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향은 급하게 만들면 절대 만족할 수 없어요. 마음에 드는 향이 나올 때까지는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로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향을 조합하다가, 결국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만족스러운 향을 완성해 간 방문객도 있었다.

 

이동진 조향사는 향을 만드는 내내 손님의 취향을 묻고, 향을 맡는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필요할 때만 아주 조금씩 조언을 더한다. 조향사의 역할은 ‘대신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잡아주는 안내자에 가깝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공방에서는 케미컬 향료와 천연 에센스 오일을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 케미컬 향료는 향의 구조를 빠르게 잡아주고, 에센스 오일은 풀 향이나 자연적인 이미지를 표현할 때 깊이를 더한다.

 

“완성도는 높은데 어딘가 아쉬운 향들이 있어요. 그걸 현장에서 바로 조금씩 채워주는 게 제 역할이죠.” 그는 향을 ‘완벽하게 만드는 일’보다 ‘끝까지 만족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공방에서는 시간 제한보다 결과가 우선이다. 향이 완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늦어져도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이동진 조향사 학교 출강 모습

 

공방 한쪽에는 큼직한 석고 방향제가 놓여 있다. 장식 오브제로도 활용 가능한 이 석고 방향제는 색칠 체험이 가능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향은 석고에 직접 섞지 않고 별도의 병에 담아 사용하도록 안내해, 향의 지속력과 조절까지 고려했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의 마스코트 '스라'

 

공방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존재도 있다. 공방의 마스코트 강아지 ‘스라’다. ‘아스라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스라는 향 시향으로 지친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들어준다. 반려견 동반 방문도 가능해, 공간은 한층 더 편안한 온기를 띤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가장 인상 깊었던 의뢰로 이동진 조향사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업자 등록 이전, 80세에 가까운 한 남성이 ‘시골에서 농사짓던 시절의 향’을 만들고 싶다며 연락해왔다. 반년 동안 택배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향을 다듬었고, 완성된 향을 전달한 뒤 걸려온 감사 전화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향 하나로 이렇게까지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어요.”

 

 

공방을 열기 전,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았던 시절 찾아온 첫 손님 역시 잊을 수 없다. 간판도, 안내 문구도 없던 공간에 불쑥 들어온 그 방문객은 아스라이 향수공방의 진짜 첫 손님이 됐다.

 

▲ 사진 = 아스라이 향수공방

 

이동진 조향사의 계획은 공방 운영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퓨저와 룸 스프레이를 시작으로 개인 향 브랜드를 론칭하고, 장기적으로는 제조 시설을 갖춘 맞춤 조향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더 나아가 보육원 등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조향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그의 오래된 꿈이다. “어릴 때 향을 제대로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향은 기억을 건드리는 힘이 있어요. 잊고 있던 장면을 불러오기도 하죠.”

서서히 잊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것.

아스라이 향수공방은 오늘도 향으로 사람들의 기억 한켠에 조용히 남고 있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srai_scent_studio/ 

작성 2026.02.07 22:15 수정 2026.02.0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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